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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뿐 아니라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평안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진 않지만 세계 곳곳에서 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당장 국내에서도 총기난사와 살인사건들이 빈번합니다. 정치와 이데올로기 양극화는 나라를 분열시킬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교단도 신학적 갈등으로 분열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가족 간의 갈등들도 많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평화롭지 못합니다.

편집장의 자리에서 보면 우리 교단의 깊은 분열이 보입니다. 제가 받는 편지나 독자 여론조사에 따르면 어떤 분들은 저를 “지금껏 최고의 편집장” 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어떤 분들은 저를 “거짓 교사”라고 생각하며 해고를 원합니다. 비록 작은 예이긴 하지만, 이것은 우리를 분열시키는 훨씬 크고 더 중요한 문제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평강의 왕(이사야 9:6)이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을 앞두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화평의 복음”(행 10:36; 엡 2:17) 을 전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비록 우리의 예수님에 대한 충성이 반대를 불러 올지라도 우리는 화평하게 하는 자로 부르심 받았고(마 5:9), 화평의 일을 도모합니다(롬 14:19). 의와 평강과 희락과 함께 화평은 하나님 나라의 구성 요소입니다(롬14:17). 이는 성령의 열매 중 하나입니다(갈5:22).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뿐 아니라(롬 5:1)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평안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요 14:27).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하나님의 평안을 경험하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평안의 성경적 개념은 히브리어 단어 샬롬에서 왔습니다. 샬롬은 “평안”이라고 영어에서 해석되긴 하지만 온전함, 웰빙, 조화로운 관계 등을 포함한 광범위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적 평안은 단순히 갈등의 부재가 아닙니다. 문제가 없는 인생이 아닙니다. 그것보다 훨씬 깊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인간이 고통과 혼란, 갈등의 중심에서 웰빙, 온전함, 심지어 조화로운 관계까지 누린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런 평안은 정말이지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넘는”(빌 4:7, 새번역)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언제나 변함 없는 사랑에 근거한다고 믿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고후 13:11)이라고 칭합니다. 저는 고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에게도 적용된다고 믿습니다. “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비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사 54:10)

가톨릭 신부인 고 헨리 나우웬 신부은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깊이 알고 그 사랑 안에서 기뻐하는 사람들만이 참된 의미의 화평의 중재자가 될 수 있습니다(희망의 씨앗, 172쪽).” 라고 쓴 바 있습니다. 정말이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되새겨야 합니다. 참으로, 그 사랑 안에서 기뻐해야 합니다! 나의 모든 실패와 죄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랑하시며 그 사랑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깊이 그리고 진실로 알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나서야 저는 하나님의 화평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런 후에야 제가 그리스도와 동역 하는 화평의 중재자로 섬기기 위해 불안정과 의심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그리스도와 동역하는 화평의 중재자로 섬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번 성탄절에 저는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리스도의 화평의 중재자가 되는 자유를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살후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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