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근 한 교회 중고등부에서 대중 음악에 대한 강연을 했다. 분별력을 위해 유명한 새 찬양을 추가하기로 결정했다. 그 찬양은 컨트리 음악과 비슷해서, 나는 분명 모호한 음악 장르에 대해 불꽃튀는 토론을 야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어진 대화에 나는 깜짝 놀랐고, 교회에서 청소년들과 예배에 대한 접근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 드러났다. 마지막 음이 사그라들며, 몇몇 학생들이 곧장 그 음악과 이런 류의 음악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 그들이 불편하게 느꼈던 세 가지 주제는 다음과 같다.
1) 음악. 그들의 불만은 노래가 음악적으로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한 학생이 말했다. “첫 소절 들으면 다음에 어떻게 나갈지 뻔해요. (다른 새 찬양들이랑) 똑같아요.”
2) 가사. 그들은 가사가 너무 단순해서 싫다고 했다. 한 학생이 대부분의 새로운 찬양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냉소적으로 말이다. “나는 하나님을 찾았고, 내게 소망이 있고, 내 모든 문제 사라졌네. 할렐루야!”
3) 반복. 그들은 시도 때도 없이 새로운 찬양을 들으며 인내하는 것을 견딜 수 없어했다. 어디서 찬양을 듣는지 물어보니 분노에 차서 말했다. “모든 곳에서요. 집에서, 교회에서, 부모님이랑 차 안에서요.”
그 자리에 있었던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은 새로운 찬양을 듣는 것에 질렸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줬다.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교회에서 찬송가를 더 많이 불렀으면 좋겠어요(그래서 내가 이런 종류의 음악을 듣지 않아도 되도록).”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큰 문제 하나가 분명해졌다. 많은 예배 사역자들은 주일 아침 예배 때 새로운 찬양을 고른다. 학생들이 이런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들의 예배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날 밤 십대들과 나눈 대화를 보면, 비록 표본은 적지만, 오히려 그 반대가 맞다고 생각한다. 음악과 가사, 반복에 대한 그들의 비판은 통찰력이 있었다. 여기 그 이유가 있다.
1) 역사적으로 예배를 위한 교회 음악은 당시 대중 음악 스타일을 적용해 왔다. 새로운 찬양들은 청소년들이 즐기는 음악 스타일이 아니다. 청소년들의 취향은 샘플링, 힙합, 팝 쪽인데 반해, 새로운 찬양은 기타가 주를 이룬 컨트리와 락앤롤이다.
2) 새로운 찬양은 보통 짧은 도입부(verse)와 브릿지로 고조시키고 후렴을 반복한다. 외우기 쉽고 부르기 쉽게 하기 위해, 가사는 깊이 있게 들어가지 않는다. 이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어려운 삶의 상황과 감정적인 어려움들을 말할 수 있는 찬양을 원했다.
3) 청소년들은 교회에서, 집에서, 어른들과 함께 있는 차 안에서와 같이, 본인들이 찬양을 직접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자신들과 접점이 없는 찬양을 들으면 들을 수록, 더 많이 답답함을 느낀다.
청소년들이 은혜 받는 찬양을 찾기란 쉽지 않다. 샘플링, 힙합, 팝 장르의 찬양이 많지 않다. 청소년들이 감정이나 경험을 공감하며 이입할 수 있는 찬양은 드물다. 사실상 청소년들을 제대로 섬길 수 있는 찬양은 이제 쓰여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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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ah van Dijk is a popular music expert who speaks and writes to help audiences understand the impact popular music has on their faith and identity. www.micahvandij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