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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교만한 처신과 행동들을 축하하고 그에 보상을 해 주는 북미주 문화의 영향을 더 받아온 것일까요?

제가 예전에도 썼듯이 우리 교단은 신학적 우월이라고 여겨지는 영적인 교만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021년 6월, "부흥과 영적 교만") C.S. 루이스는 그의 명작 순전한 기독교에서 한 챕터 전체를 할애하여 교만이라는 죄를 다루었습니다. 그는 교만을 “가장 큰 죄” 라고 일컬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루이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기독교 교사들에 의하면 가장 근본적인 악이자 최고의 악은 교만입니다. 그에 비해 음란, 분노, 탐욕, 술 취함 등은 마치 벼룩한테 물리는 것만큼이나 사소한 악입니다. 왜냐하면 그 교만을 통해서 마귀가 마귀 되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다른 모든 악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것은 완전히 하나님과 반하는 마음 상태입니다 (109쪽).”

만약 루이스가 침소봉대한다고 생각한다면, 어거스틴과 아퀴나스, 루터와 칼빈에 이르기까지 과거 여러 위대한 신학자들이 교만을 “죄의 핵심이자 근원”(New Dictionary of Christian Ethics & Pastoral Theology, 685쪽)으로 여겼던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천사 루시퍼가 타락하여 사탄이 된 것도 교만 때문이라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교만은 아담과 하와가 죄인으로 타락한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역사적으로 기독교는 교만, 특히 영적 교만을 최고의 죄 중의 하나로 꼽았습니다. 맞습니다. 루이스가 언급한 것처럼 성적 부도덕보다도 더 심한 죄입니다.

우리는 보통 소돔의 큰 죄가 동성애의 문란함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의 딸들에게 교만함과 음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 주지 아니하며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보고 곧 그들을 없이 하였느니라 (에스겔 16:49-50).” 여기서 하나님의 강조점은 명확하게 소돔의 교만 즉, 거만과 오만 및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긍휼이 없는 것입니다. 동성애로 인한 음란은 “가증한 일”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는 있겠지만, 가장 큰 죄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성적인 죄보다 여러분의 교만을 더 걱정하십니다

루이스가 썼듯이 “ 만약 누군가 기독교인들이 음란을 최고의 악으로 여긴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상당히 잘못된 생각을 가진 것입니다. 육체의 죄악들은 나쁘지만 다른 모든 죄들 가운데 작은 죄들입니다. 모든 최악의 쾌락은 순전히 영적인 것입니다…그것이 바로 정기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는 차갑고 자기의가 충만한 도덕군자가 창녀보다 지옥에 훨씬 더 가까이 있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물론 둘 다 아닌 것이 더 낫습니다 (94-95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마지막으로 언제 교만에 대한 설교를 들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역사적인 이 강조점을 잃어버린 것일까요? 오히려 교만한 처신과 행동들을 축하하고 그에 보상을 해 주는 북미주 문화의 영향을 더 받아온 것일까요? 그렇지만 성경은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야고보서 4:6, 베드로전서 5:5)”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건강한 자긍심이나 자존감 (고전 5:12, 갈 6:4) 혹은 가치 있는 성취에 대한 자부심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루이스에 의하면 죄로 가득찬 교만은 “그 속성 자체와 경쟁합니다.” 교만이란 항상 더 나아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보다 더 의롭게 되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죄악된 교만은 자기 기만적입니다 (오바댜3, 예레미야 49:16). 그것은 우리를 스스로 교만하지 않다고 속이는 것이고 심지어 더 나쁘게는 겸손을 가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낫다고 인정하시고 그렇게 우리를 보시기를 상상합니다. 어쩌면 잠재의식 속에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죄악된 교만을 물리치고 진정한 겸손을 가질 수 있을까요? 첫번째 단계는 우리 모두가 죄악된 교만이라는 죄를 범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루이스가 말했듯이 “만약 여러분이 스스로 자만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은 정말로 자만하다는 뜻입니다 (114쪽).” 이제 교만이라는 죄에 대항하는 역사적 기독교의 강조점을 다시 회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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