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창세기 12:1-4에서 놀라운 일을 행하신 이래로 교회는 그에 부응하기 위해 달려 왔습니다.
제가 처음 그것을 감지했을 때를 기억합니다. 그날 저는 아내와 함께 푸에르토리코 바야만 개혁교회의 작은 예배당에 앉아 있었습니다. 주일 모임을 생각하자 얼굴에는 기쁨 가득한 미소가 번지고 동지애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기타, 마라카스, 탬버린 연주 소리와 박에 빨래판 같이 홈을 파서 만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악기인 귀로우를 긁는 소리가 비트에 맞춰 들렸습니다. 시끌벅적했고, 더웠고, 스페인어가 들렸던 그날은 하나님의 다양한 교회의 고동치는 심장을 들여다 보는 창이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았습니다!
나이지리아 동아 지역에 있는 우리 교회 예배당에서 헌물로 드릴 망고나 키친타월을 손에 들고 춤추며 들어가는 장면을 절대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 후 그 작은 교회를 경건하게 청소하며 함께했던 일본 북미주
개혁교회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저는 아이들이 빨간색 과일주스를 카펫에 흘릴 때 옆에서 커피를 홀짝홀짝 마실 상황을 기대했거든요). 저는 아이티의 벨라대르에서 얼마 전 사망한 교회 리더를 위한 철야기도로 모여 함께 애통했던 것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교회의 다양성은 하나님의 영혼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하나의 창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창세기 이래로 하나님과 보조를 맞추고자 달려 왔습니다.
창세기 12:1-4에서 처음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모든 사람을 축복하실 수 있는 통로가 되는 위대한 민족이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몇 장 뒤 하나님은 많은 민족의 부모가 되게 하시겠다고 아브람과 사래와 언약을 세우셨습니다(창세기 17:4-5). 이스라엘은 주님과의 언약 관계 안에서 다른 민족들을 초청하기 위해서 존재했습니다(이사야 60).
혼란에 빠진 유대인들을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비전이 모든 민족과 족속, 방언으로 구성된 몸이 되는 것이라고 설득하기 위해서, 하나님 자신이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로 오시는 것을 감행하셨습니다. 베드로조차 이 비전을 따라 가는 것을 버거워했습니다. 바울이 유대 관습을 따르는 특징을 지닌 교회를 고집하는 베드로를 바로 잡아야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갈 2:11-14).
아마 한 교단으로서 우리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창세기 12장에 처음 표현된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가기 원하는가 입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일주일 중 인종 분리가 가장 심하게 일어나는 때가 주일 오전 11시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교회는 미국의 교회이지만 제 경험상 기독교인들이 다수인 모든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북미주 개혁교회는 “우리의 이웃과 새신자들의 문화를 존중하는 관계를 형성해갈 때, 정의와 화해 및 환영으로 나아가고 신앙을 나눔으로써 다양성과 연합 안에서 자라가는 것”을 4대 사역계획 중 하나인 “이정표”로 구별합니다. 이 비전의 가장 신나는 측면은 어떻게 이 비전이 교단을 성장시켰는가입니다.
과거 10년간 북미주 개혁교회 성장의 큰 부분은 사실상 소수 인종 그룹들의 교회 개척 및 그들과의 협력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단의 10%에 육박하는 인구는 한인 교회이며 라틴아메리카계도 점점 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축복이며 우리 교회들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 안에서 성령님을 따라갈 수 있는 기회입니까!
저는 여러분이 이 달의 “우리가 함께하는 사역”섹션에서 인종적 다양성에 대한 통찰력 있는 이야기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인종적으로 다양한 상황에서 살고 예배하고 섬기는 것이 겁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실수를 저질러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 교단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고, 굉장히 멋진 부르심입니다.
About the Author
Rev. Zachary King is the general secretary of the CRCNA. He is a member of Cascade Fellowship Christian Reformed Church in Grand Rapids, Mich.